"여보세요! 정민이구나!"
"그래 임마! 너 어디야?"
"행사취재하고 돌아가는 길이야!"
"냉큼 우리 매형 가게로 와! 어딘지 알지? 응원해야지!"
지난 토요일 저녁, 대망의 2010 남아공 월드컵 16강전 경기가 열리는 날이다. 상대팀은 예선전 전 경기를 무실점을 이기고 올라온 남미의 복병 우루과이이다. 포를란, 카세레스, 수아레스, 페레스 등 우리에게 낯익은 선수가 가득한 화려한 팀이기도 하다. 그러나 공은 언제나 둥근 법이다. 나는 힘껏 엑셀레이터를 밟았고, 차량은 튕겨져나가듯 질주하기 시작하였다.
"오랫만이군!"
일전에 발렌타인데이를 맞이하여 당구 내기를 했을 때, 등장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미 영업이 끝났나보다. 가게문은 닫혀 있었는 창 너머로 매형께서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매형 등 뒤에는 정민이 누나가 광고의 한 장면마냥 빨간 천을 휘날리고 있다.
"심상치 않아!"
2010/02/16 - [가츠의 옛날이야기] - 가츠의 옛날이야기, 내기 上편
2010/02/17 - [가츠의 옛날이야기] - 가츠의 옛날이야기, 내기 下편
"오오! 가츠형 왔어요?"
가게로 들어서자 사람들이 일사분란하게 응원 준비를 하고 있었다. 테이블도 세팅하고 응원에 빠질 수 없는 시원한 꿀맥주도 준비되고 있었다. 대도시의 경우에는 사람들이 많은 길거리로 나가면 흥도 나고 재미있겠지만 조촐한 경주에서는 많이 아쉬운 편이다. 게다가 밖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레스토랑에서 응원하기로 한 것이다.
"오느라 수고했어! 오늘은 먹고 죽어요!"
"근데 너 옷에 두른 게 뭐야?"
"예쁘지? 일하고 바로 오느라 빨간옷을 준비하지 못했잖아!"
"그래서? 그게 뭐임?"
"식탁보!"
".............."
다들 일하고 바로 합류하였기에 미처 응원복장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밋밋하게 그냥 응원할 수도 없고, 없다고 포기할 의지의 한국인이 아니었다. 부랴부랴 테이블에 있는 붉은 식탁보를 저마다 두르고는 붉은악마로 변신을 완료하였다.
"내기가 빠지면 섭하죠!"
즉석에서 점수맞추기에 들어갔다. 나는 통쾌한 대한민국의 승리를 기원하며 2:0 스코어 돈을 베팅하였다. 아쉽게도 경기 시작한 지 7분만에 마음을 접어야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우리들은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경기를 시청하기 시작하였다.
"지금부터 전반적 경기가 주심의 휘슬과 함께 시작되겠습니다!"
"심장이 터질 거 같아!"
역사적인 경기가 주심의 휘슬과 시작되었다. 마지막 예선전인 나이지라아전을 치른 지 얼마되지 않았기에 체력적으로 부담스럽지 않을까 걱정도 하였지만, 다행히 선수들의 몸놀림은 어느 때보다 좋아보였다. 초반부터 주도권을 유지하며 플레이를 펼쳤다. 아니나 다를까? 우루과이 문전에서 프리킥 찬스를 맞이하였다.
"삐이! 반칙입니다! 키커는 지난 경기에서 그림같은 슛을 보여준 박주영!"
"골! 골! 골!"
우리들은 모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한 목소리로 골을 외치기 시작하였다. 레스토랑에 울려퍼지는 붉은악마들의 외침! 마치 이대로 들어갈 것만 같았다.
"박주영 선수 슛! 아아앗!"
"봤어? 봤어?"
"골대 맞았어!"
박주영 선수의 그림같은 프리킥은 아쉽게도 골대를 맞고 나가버렸다. 우루과이 골키퍼마저 포기하였는데 단지 몇센티 때문에 선제골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다.
"일단 마셔!"
초반부터 가열된 응원, 잠시 목을 축이고 몸과 마음을 추스렸다.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 경기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챔피언스 리그를 보는 마냥, 빠른 템포와 공격적인 스타일에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게다가 선수들의 개개인 실력도 일취월장하였기에 그들의 개인기, 볼트래핑을 보는 재미 또한 매우 유쾌한 일이다.
"앗! 한국 위기입니다!"
"우루과이의 선제골!"
순식간에 우루과이가 선제골을 기록하였다. 직접 두 눈으로 보았지만 믿고 싶지 않았다. 이제부터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드라마 모드로 진입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제 시작이구나! 오늘 또 한 편 찍어보자!"
"가자 대한민국!"
"오 필승 코리아! 짝짝! 오 필승 코리아! 오오오오오!"
차가운 겨울비가 쏟아지는 남아공 현지에서 투혼을 불사르는 태극전사들을 보니 우리는 편하게 앉아서만 응원할 수 없었다. 문득 남아공 현지에서 직접 응원하고 온 지난 아르헨티나전이 떠올랐다. 관중석에서 목 터져라 대한민국을 외쳤고, 우리 자랑스런 태극전사들은 그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만회골을 성공시켜고 우리에게 달려왔다.
경기에 집중하면 관중들의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어떻게 안 들릴 수가 있겠는가? 그들 또한 관중석 수많은 서포터즈 중에서 붉은 악마들을 찾아 두리번 거리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보다 더 악착같이 힘을 내며 뛰는 것이다.
비록 지금 레스토랑에서 외치는 응원소리는 그들의 귓가에 들리지 않겠지만, 붉은 악마들의 마음만큼은 분명히 전달될 수 있을 거라 확신하였기에 더욱 열심히 응원하였다.
"앗! 문전혼전! 이청용! 골입니다아! 고오오올!"
"사랑한다 대한민국!"
"이대로 죽어도 좋아!"
아니나 다를까? 시종일관 우루과이 골문을 위협한 우리 태극전사들이 기어이 동점골을 작렬시키고야 말았다. 이보다 강렬한 카타르시스가 세상에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온 몸이 짜릿하였다.
이 순간, 전 세계 곳곳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 계절, 장소, 시간 등 모든 주위 환경은 다르겠지만 모두 한마음으로 즐거워 하며 행복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이 것이 바로 각본없는 드라마, 스포츠의 힘 아니 자신의 조국을 가진 국민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바로 이거죠!"
"역전! 역전! 역전!"
최고조로 흥분된 우리들은 한시도 TV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목놓아 역전을 외쳤다. 흡사 모르는 사람이 보면 광신도로 착각할 정도로 말이다. 이때부터 나도 카메라를 내팽겨치고 제대로 응원에 가세하였다.
"삐이이잇! 경기 종료를 알리는 주심의 휘슬! 아아 너무나도 아쉽습니다!"
태극전사들의 끝없는 질주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그라운드를 뛰어다니며 기뻐하는 우루과이 선수들 뒤편으로 그대로 주저앉아 있는 태극전사들이 화면에 잡혔다.
푸르른 잔디가 아름답게 깔려있는 넬슨 만델라 베이 월드컵 경기장, 그 곳은 지금 천국과 지옥이 공존하는 곳이다. 승자에게는 무한한 기쁨을, 패자에게는 잔인하리만큼 아픈 슬픔을 말이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린지 한참이 지났지만, 선수들도 응원하는 우리들도 그저 말없이 아쉬움을 삭히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지금 이 순간, 그 누구의 잘못도, 책임도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괜찮아! 누나!"
2010년 무더운 여름, 4년 전에도 그랬고, 8년 전에도 그랬듯이 우리 모두는 하나가 되어 사랑하는 대한민국을 원없이 외쳤다.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월드컵 경기가 있는 날만큼은 그동안 자주 만나지 못한 지인들과 아니 대한민국 전체가 웃고 울었다. 붉은색만 보면 괜스레 박수를 치며 대한민국을 외쳐야 될 거 같았던 지난 한 달, 너무나도 소중한 시간이고 추억이다.
가게를 나서니 밖에는 아직도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마치 나의 슬픔을 달래주듯 그렇게 빗방울은 뜨거워진 나의 몸을 시원하게 식혀주었다.
자랑스런 태극전사! 한 없이 뜨거운 가슴을 가진 붉은악마!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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